editor: 정유민
탕롱 황성은 베트남의 정치·군사적 핵심으로 오랜 시간 동안 도시계획과 방어체계가 상호 보완적으로 작동한 사례다. 독자는 이 글을 통해 탕롱 황성의 형성 배경, 공간 구조, 주요 방어 요소, 시대별 변화와 보존 현황을 한눈에 이해할 수 있다. 글은 역사적 근거와 최근 발굴 결과를 바탕으로 사실 위주로 정리한다.
탕롱 황성의 형성과 역사적 배경
수도 이전과 초기 설계 원칙
1010년 리 왕조가 도읍을 천도하면서 탕롱이 형성됐다. 도읍 배치는 중앙집권적 관료제와 제례 공간을 중심으로 설계됐으며, 방향성과 중심축을 강조하는 전통이 반영됐다. 고대 기록과 최근 발굴 결과는 초기 궁성의 나무 기둥 구조와 장방형 축이 있었음을 보여 준다.
연속적 개축과 외세의 영향
조선·레·응우옌 등 여러 왕조를 거치며 황성은 반복적으로 개축됐다. 19세기 이후 서양의 화기와 포병 전술 유입으로 방어구조에 석조·벽돌 요소와 포대가 도입됐다. 19세기 말 프랑스 점령기에는 기존 구조물의 상당 부분이 파괴되거나 개조됐다.
탕롱의 도시계획 원칙과 핵심 구성
중심축과 기능적 구획
탕롱은 왕궁·관청·종교·군사·주거 공간을 계층적으로 배치해 권력의 상징성을 시각화했다. 중앙축은 제례와 정치 행사의 연속성을 담보하며, 주요 건물은 이 축을 따라 배치됐다. 이러한 배치는 동아시아의 전통적 도시 모델과 유사하다.
수로와 교통망의 계획적 활용
레드리버와 연결된 운하와 해자는 물류와 방어 양면에서 핵심 역할을 했다. 물길은 상업과 군수 보급에 사용됐고, 홍수 조절과 방어용 해자로도 기능했다. 한 연구에서는 탕롱의 수로 체계가 도시의 지속성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보고한다.
탕롱 황성의 주요 방어 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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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정리Mono Gr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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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성벽과 옹벽 | |
| 2. 해자와 배수 시스템 |
탕롱의 방어는 다층 구조를 취했다. 초기에는 흙과 목재로 된 둔덕과 성곽이 주를 이뤘고, 이후에는 벽돌과 석재로 보강됐다. 해자는 외부 침입을 지연시키는 주요 수단이며, 배수로와 연계해 성내 침수 피해를 줄이는 역할을 했다. |
게이트와 접근 통제
문이나 관문은 단순 통로가 아니라 방어의 첫선이었다. 주요 관문은 성문·우회로·방호시설을 통해 적의 접근을 통제하도록 설계됐다. 관문 주변에는 병영과 교대 근무소가 배치되어 신속한 대응이 가능했다.
방어체계의 기술적 변천
화기 도입과 구조 변화
화약·포병의 확산은 탕롱의 방어 설계를 변화시켰다. 고대의 수직 성벽 위주의 방어는 포병에 취약해졌고, 옹벽과 포대, 낮은 각도의 요새화가 도입됐다. 18~19세기 문헌과 현장 유물은 포격에 대응한 보강 흔적을 보여 준다.
근대적 군사시설과 프랑스의 개입
프랑스 점령기에는 요새와 병영이 재구성됐다. 이 과정에서 전통 건축물의 일부가 철거되거나 변형됐다. 따라서 현재 남아 있는 구조는 여러 시대의 누적 기록으로 이해해야 한다.
도시 기능과 방어의 상호작용
행정·종교·군사의 통합적 배치
황성 내부의 배치는 권력의 효율적 운영과 방어의 효율성을 동시에 추구했다. 관청과 제례 공간은 중앙에 위치해 상징적 권위를 확보했고, 군사 시설은 주변에 배치돼 비상시에 신속히 동원될 수 있게 했다.
주민 생활과 경제 활동의 방어적 고려
시장과 주거지의 배치는 방어 측면을 고려해 설계됐다. 좁은 골목과 경계 구획은 통행을 통제하기 용이했고, 수로 기반의 물류망은 보급과 퇴각로로서의 가치를 가졌다.
보존과 연구: 현재의 접근법
고고학 발굴과 기록의 통합
2002년 이후의 발굴은 11세기 궁실 기둥 자국과 연속적 축조 흔적을 확인했다. 이에 따라 보존 정책은 발굴 자료와 역사 기록을 통합해 복원 기준을 설정하는 방향으로 전개된다. 국제기구의 권고는 원형 보존과 최소한의 복원을 강조한다.
관광·교육과 보존의 균형
관광 수요와 보존 필요성 간 균형이 중요하다. 관리 당국은 방문 동선과 해설 공간을 통해 교육적 가치를 높이면서 구조물 손상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도입하고 있다.
탕롱 황성의 도시계획과 방어 체계 요약 및 결론

핵심 요약
탕롱 황성은 중심축 기반의 권력 공간과 수로·성곽 기반의 방어 체계를 결합한 도시다. 시대별 군사 기술 변화와 외세의 개입으로 구조가 변화했지만, 기본 설계 원칙은 권력의 상징성과 방어 효율성의 병행이었다. 발굴과 기록은 초기 설계의 실체를 점차 밝혀 주며 보존 정책에 근거를 제공한다.
현대적 함의
현대에는 보존과 활용의 조화가 중요하다. 복원은 역사적 근거에 기반해 최소한으로 수행해야 하고, 교육적 가치를 높이는 방향으로 도시계획적 해석을 제시해야 한다. 도시계획과 방어 체계를 종합적으로 이해하면 탕롱이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문화자원으로서의 가치를 유지할 수 있다.
